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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만리포마을 전경사진입니다.
작가사진

구갑회(具甲會)
1954년 보령에서 태어남. 공주교육대학과 방송대학을 졸업했다. 1987년 이후 태안에살면서 현재 태안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태안문학) 창간호부터 거의 거르지않고 수필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작품소개

남편의 어떤 모습 ⑥ - 남편의 시낭송

나보다 먼저 아는 사람들도 꽤 많지만, 내 남편은 우리나라의 명시들을 많이 외우고 있다. 그리고 그 시들을 좋은 자리에서 낭송하는 것을 꽤나 즐긴다.남편이 쓴 글에서 안 것이지만, 남편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시를 외웠고,
군대 시절 베트남 전쟁터에서 집중적으로 많은시를 외웠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는 100수가 넘는 시들을 외웠는데, 하염없이 흐르는 세월과 함께 (남편은 뇌세포의 감소' 라는 표현을 쓴다) 많은 시들을 잊어먹고 지금은 30편 정도의 시가 머릿속에 남아 있다고 한다.남편은 모국어로 빚어진 우리나라의 아름답고도 의미 깊은 명시들을 자신이 수십 수나 지금도 외구고 사는 것을 긍지와자랑으로 여긴다. 남편은 소설이 본업이다. 하지만 시도 꽤 많이 짓고, 시평도 쓴다. 지금까지 15명 시인들의 시집에 해설을 썼다. 남편이 쓴 시집 해설을 읽으면 시라는 게 얼마나 재미있어지는지 모른다. 시를 더 잘 이해할수 있게 되고, 남편이 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느낄 수 있다.나와 결혼가히 훨씬 전의 일이지만, 1983년에 우리 태안의 몽산포에서 '여름해변시인학교'가 열렸다고 한다. 수많은 시인들과 시인지망생들이 와서 남면초등학교 교실에서 숙식을 하며 몽산포 해변을 즐겼다고 한다.남편은 당시(흙빛문학회) 회장으로서 흙빛 문학회 이름으로 환영 현수막을 남면초등학교에 걸어주고, 구상 선생님과황금찬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유명 시인 선생님들을 처음 뵈었다고 한다.그리고 하루는 저녁에 여러 중견 시인들과 술자리를 함께 했다고 한다. 거기에서 한잔 술에 흥이 겨워진 남편은 자신이암송하고 있는 시들 중에서 몇편을 골라 낭송했다고 한다. 소설가가 시인들 앞에서 시를 낭송하자니 미안스럽기도 하고자랑스럽기도 하더라고 했다.그런데 놀랍게도 시인들은 명시를 암송하고 있는 이가 한 명도 없더라고 했다. 답례로 시를 낭송하는 이가 더러 있었지만 모두 자작시를 외운 것이더라고 했다. 이렇다하는 시인들이 암송하고 있는 남의 시가 하나도 없는 사실이 이상한 허전함과 섭섭한 느낌을 주더라는 얘기였다.하지만 다음날 저녁에는 흙빛 문학회원 몇 명과 함께 몽산포 해변에서 구상 선생님을 모시게 되었는데, 남편이 구상 시인님의 청년 시절 시 「길」을 낭송해 드리니 구상 선생님이 어린애처럼 좋아하시면서 답례로 김소월 님의 「산유화」를 낭송해 주시더란다. 그리고 구상 선생님은 김소월 님의 「산유화」에 대해 자세히 해설을 해주시더란다.

노 시인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김소월 님의 명시 「산유환」 낭송과 해설을 들으며 남편은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날밤의 그 해변 풍경과 감동을 남편은 지금도 즐겁게 추억하곤 한다.지금도 적당한 자리에서 한잔 술에 흥이 나면 곧잘 시낭송을 하곤 하는 남편은 한때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낭송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 사실을 신혼 시절에 (여성자신) 이라는 잡지를 통해서 소상히 알 수 있었다. 물론 남편이 쓴 글이었다. 남편은 밴드가 있고 춤추는 플로어가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술집에 가서도 노래를 부르기 전에 시를 낭송하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를 두 편 정도 낭송하고 나서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는 으레 가곡이었다고 한다.그런데 놀랍게도 남편이 시낭송을 하면 장내가 쥐 죽은 듯 고요해지면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남편의 시낭송 감상에열중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만큼 남편의 시낭송 솜씨가 출중했음을 말해주는 것일 듯싶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것을 믿는다.나는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의 시낭송을 많이 들었다. 장거리 운전을 할 때 남편의 시낭송은 더욱 각별한 맛이있었다.남편은 또 잠자리에서도 가끔은 시를 읊곤 했다. 하루 생활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저녁기도를 한다음 잠자리에 든 남편이 잠들기전에 조용히 시를 ?것을 듣노라면 온 세상이 평화로움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내게도 남다른 행복이었다. 남편이 그렇게 아름답고 고맙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남편은 금년 가을에 두 번 서울 나들이를 했다. 두번 모두 평일이라서 나는 동행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9월 중순과10월 중순께 서울에 가서 밤샘 음주를 하고 왔다.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에 글을 쓰는 여러 진보적 성향의 형제 자매들과 남편은 이미 동지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 진보 그룹의 대부 격이었다. 남편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들 역시 남편을 사랑했고 존경했다.그들과 어울릴 일이 있어서 남편은 굳이 두 번이나 서울 나들이를 한 것이었다.그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 남편은 시낭송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들은 어느덧 남편의 시낭송 솜씨를 잘 기억하고 또 즐기는 형국이었다.우리 태안 천주교회는 지난달 21일 주일에 태안군민체육관에서 '40주년 추수감사제'행사를 가졌다. 그 행사를 남편은 일찍부터(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에 광고를 햇다. 그 광고 덕에 서울에서 사시는 여섯분이 태안을 찾았고 우리 태안 성당의 추수감사제 행사에 참석했다.태안군민체육관 마당 한 곳에 자리를 펴고 그들을 대접하는 자리에서도 남편은 시낭송을 했다. 그리고 추수감사제 행사에 참석했다.태안군민체육관 마당 한 곳에 자리를 펴고 그들을 대접하는 자리에서도 남편은 시낭송을 했다.

그리고 추수감사제 행사가 끝난 후 그들을 모두 백화산으로 안내했는데, 교장바위 위쪽 너럭바위에서 술 한잔을 할 때도 남편은 시낭송을 했다.모두 그들의 요청에 의해서였다.그 날 남편이 태안군민체육관 마당과 백화산 중턱 너럭바위 위에서 낭송한 시는 노천명의 「 푸른5월 」이육사와 「광야」와 「황야」, 유치환의 「깃발」, 서정주의「국화 옆에서」등이었다.그런데 남편에게 시낭송을 부탁ㅎ나 그들 중에는 특별한 것 한가지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남편이 태안 성당 '추수감사제'를 광고하는 글을(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에 올렸다.그 글 밑에 많은 '꼬리글'들이 달렸다. 그 꼬리 글들 중에는 석일웅이라는 프란치스코회 소속 수사님이 달아놓으신 글도있었다. 그 꼬리글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태안에 가시거든 지요하 선생님께 꼭 시낭송을 부탁하십시오. 그리고 지요하 선생님의 시낭송을 들으면서 '사람의 선함은 저렇게도 오는구나'라는 사실을 만끽하십시오."석일웅 수사님의 그 말을 기억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남다른 행복감을 느꼈다. 백화산 중턱 너럭바위에서 저녁놀빛에 취하며, 그리고 남편의 시낭송을 다시 들으며 나는 석일웅 수사님의 그 말씀을 또 한번 상기했다.찬란한 저녁놀빛 속에서 색다르고 질감 좋은 행복감이 내 가슴 속으로 조수처럼 밀려드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