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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만리포마을 전경사진입니다.
작가사진

조규훈(曺圭訓)
1950년 태안군 원북면에서 태어남. 인천초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경찰에 투신, 현재경기 지방 경찰청 감사실장으로 근무하고있다. 2001년 (문예한국)지 수필 부문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하였고, 현재 (가톨릭 다이제스트)의 고정 필자로 참여하고있다. (태안문학) 창간호부터 다수의 시와 수필들을 발표하고 있다.(한국문인협회)회원.

작품소개

40여 년 만의 해후

얼마전 가으도 깊어 가는 토요일 오후에 갯내음 물씬 풍기는 인천 항구 뒷골목 정취 어린 선술집에는 40여 년 만에 만나는 문영길 목사와 초등학교 동창들의 뜻깊은 해후가 있었다.내 고향 태안 땅의 오지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40여 년 만에 내 개인적으로는 외가의 형님이고 동창인 문영길 목사가 멀리 미국에서 귀국하여 동창들과 만나 그동안의 회포를 풀면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내가 자라던 50년대 후반의 농촌은 피폐할 대로 피폐하여 먹고사는 문제는 정말 고통이였고 전쟁이었다.보릿고래를 넘기는 봄이면 식량이 떨어진 사람들은 먹거리를 찾아 들로 산으로, 그리고 바다를 헤매었고 끼니를 잇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황이 들어 얼굴이 누렇게 변하고 퉁퉁 부어 있기도 하였다.요즈음의 이디오피아나, 가나 같은 나라와 흡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때 그는 어렵게 초등학교를 마치고어떤 사정으로 인하여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 땅 미국으로 떠났었다.
그런 그가 온갖 어려움과 고초를 이겨내고 의젓한 목사님으로 성공하여 우리들 앞에 나타났으니 그를 보는 우리들은 경이로움과 감개무량 그 자체였고, 그 당시를 살아온 우리들은 어려웠던 그 시절을 이야기하며 밤이 새는 줄을 몰랐다.
말도 통하지 않고 풍속도 달느 이역만리 타국에서 그만큼 성공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또한 피부색이 다르고 더군다나 가난한 아시아의 분단국에서 온 동양인으로서 보이지 않는 멸시와 천대를 받았을 것은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고향 생각이 간절하였을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40여 년 만에 자신이 태어난 고향 땅을 찾은 그가 대견 스럽게만 보였다.

영길아, 은복아, 상수야, 상성아, 세제야! 라고 스스럼없이 불러 보는 정겨운 이름들이 마치 옛날 고향의 다 쓰러져 가던초등학교 교실 안의 풍경과도 같았다.역시 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서로 사는 곳은 달라도 고향이 좋은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앗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옛날 고향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이다.이제 모두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고 60을 바라보는 세월의 뒤안길에서 더 이상 늙지 말고 이대로 있었으면 하고 부질없는생각을 해 보지만 흐르는 세월을 누군들 붙잡을 수 있단 말인가!

꽃 내음 풍기는 오솔길 따라
정답게 거닐던 푸른 옛 동산!
흐르는 구름 속에 떠오른 너의 모습
푸르던 그 언덕에 뛰놀던 옛 친구여!
풀피리 불러주던 그리운 임이여

이렇게 고향을 노래했던 옛 시인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밤늦도록 마시고 취해도 할말을 다하지 못한 듯 헤어지기 섭섭해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달려오는 발걸음이 가벼운지무거운지 나도 모를 야릇한 감회가 밀려오곤 하였다.
아, 그리운 옛날이여!
못 먹고 못 입을 정도로 가난하였어도 따뜻한 인정이 오갔던 그때가 그리운 것은 웬일일까?
모처럼 고국과 고향 땅을 찾은 그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건강하게 살면서 좋은 일 많이 하기를 기원해본다.